시 이야기 (17) 썸네일형 리스트형 미숫가루 열심히 휘젖고 있으니 곁을 지나가던 친구가 그런다. "미숫가루 참 먹기 힘들어요!"...이정도 수고로움이 뭔 대순가...!허한 속 채워줄 이 고소한 맛에 비하자면 일도 아니지!꼭두새벽 일 하느라 배고프고 추웠을 내 몸을 위한 작은 위로를 꿀떡꿀떡 마신다. 다른 사람이 되다 혼자의 시간이 길어 걸어온 길이 멀어 가슴에 묻은 회한이 많아 말을 잊어 버리고 길을 잃어 버리고 나를 놓아 버리고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쉬는 날 아무 계획 없이 쉬는 날 연락이 오고 약속을 한다 별것 없지만 일어나 밥 한술에 씻고 외출 준비, 잠깐 부지런해진다 알림음에 전화기를 본다 원래 없던 갑자기 생긴 약속, 다시없던 일이 된다 덕분에 거울도 한번 봤구나 편한 옷 갈아입고 앉아 손목에 찬 시계를 푼다 아, 오늘은 원래 그래서 여전히 아무 계획 없이 쉬는 날이구나! 그때 그랬다 대화에 미숙했고 타협하지 못했다 인내가 모자랐고 방관했다 내 일 아닌듯 현실을 피했으며 결국 포기했고 도망쳤다 그때 그랬다 해거리 그해 가을이 다습게 익어 가도우리집 감나무는 허전했다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감나무도 산 목숨이어서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밭아래를 지켜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 박노해 님의 '해거리' 배부른 내가, 이 시를 읽고 감동받는다. 안으로 그리고 밑으로 살피고 챙겨야지 하는 생각, 더.. 속절없는 돌아보지마라 주저 앉아서도 안된다 너의 길이다 정해져있던 바꿀수없는 바라지마라 기대해서도 안된다그런것이다 처음부터 속절없는 이 얼마나 단호한 질서인가 그 속에 네가 있다눈감아 보아라바람을 믿고 걸음을 맡겨라 맑은 시간이 흐르는 강가에 이르러 그림자를 만나거든 그간의 너를 나누고 빛을 따라 가거라 고구마 고구마 다섯 개가 남았다 세 개를 지었다 하나를 내려둔다 두 개만 삶아 나서야겠다 조금 짧은 길을 돌아와야지 하는 얇고 좁은 의지 표현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익어갈 즈음, 겨울이다 제철이라지만 외로움을 병으로 앓아 한방에서 지낸다 체온만으로 데워진 좁은 방 흐름을 알 수 없는 온기만으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 고구마는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인데 길고 좁은 길 한참을 걷고나서야 잠깐 멈춰 앉을 작은 의자가 있고 차가워진 너를 내 속에 담으며 따뜻했을 그때를 떠올릴 테지 아, 용서를 구한다 속삭여본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순례자의 길 밤이 무서운 이유는 공간의 내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득 찬 그리움에 호흡이 가빠지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몰려든 시퍼런 고독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가만히 멈춰서 통증을 겪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해가 떠오르면 그리움도 같이 떠 오르고 고독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겨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고 삶을 구한다 겨울이 무서운 이유는 매서운 찬 바람에 눈물마저 얼어붙기 때문이다 아직 멀리 있는 숲 눈보라 치는 들판을 지나야 한다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얼어붙은 발과 손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봄이 오면 얼음이 녹고 생명이 자라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숲에 스미어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삶을 구한다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