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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야기

순례자의 길

밤이 무서운 이유는
공간의 내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득 찬 그리움에 호흡이 가빠지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몰려든 시퍼런 고독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가만히 멈춰서 통증을 겪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해가 떠오르면 
그리움도 같이 떠 오르고
고독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겨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고 삶을 구한다

겨울이 무서운 이유는
매서운 찬 바람에 눈물마저 얼어붙기 때문이다

아직 멀리 있는 숲
눈보라 치는 들판을 지나야 한다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얼어붙은 발과 손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봄이 오면 
얼음이 녹고 생명이 자라
어깨가 좁고 마른 사내는
숲에 스미어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삶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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